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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앨런 튜링

인문주 2022. 3. 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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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주연을 맡고 모튼 틸덤(Morten Tyldum) 감독이 연출하여 2014년에 공개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은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암호 해독 전문가였던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Enigma)’의 암호를 해독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공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에 대한 내용은 중간에 잠깐 언급될 뿐이고 영화의 대부분은 앨런 튜링과 팀원들이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이미테이션 게임’은 1950년에 앨런 튜링이 제안한 뒤 지금은 ‘튜링 테스트’로 불리는 일종의 컴퓨터 성능 테스트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튜링 테스트의 목적은 ‘사람의 지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기계의 능력’ 혹은 ‘인공 지능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앨런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생각'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앨런 튜링은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찾는 대신 접근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그 방식의 핵심 아이디어는 컴퓨터에게 어떤 질문을 해서 받은 대답이 인간의 것인지 컴퓨터의 것인지를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앨런 튜링은 서양의 파티에서 즐기는 게임의 한 종류인 ‘이미테이션 게임’, 즉 우리말로 ‘모방하기 놀이’ 혹은 ‘흉내내기 놀이’로 해석되는 게임의 형식을 빌려 왔습니다. 그 게임의 참가자는 A, B, C 세 명입니다. A는 남자, B는 여자, C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A와 B는 각기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C와 분리됩니다. C의 목표는 질문지를 통해 A와 B에게 질문을 해서 받은 답변지를 보고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를 맞추는 것입니다. A의 목표는 자신을 B로 C가 착각해서 틀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A는 자신이 마치 B인 것처럼 B를 모방하고 흉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반면 B의 목표는 C가 착각하지 않고 답을 맞추도록 돕는 것입니다. 앨런 튜링은 그 게임에서 A의 역할을 기계로 바꾸어 기계의 지적 능력을 테스트하는 데 적용했습니다.

 

사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인류 문명의 진보에 기여한 앨런 튜링의 진가나 진면목을 담은 영화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앨런 튜링은 오늘날 정보 기술 문명의 기반인 컴퓨터 산업 혁명의 선구자이기 때문입니다. 앨런 튜링은 일생 동안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계’, 즉 범용 컴퓨터를 만드는 일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지속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앨런 튜링이 고안한 것이 ‘알고리듬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지금 보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 개념을 바탕으로 앨런 튜링이 1936년에 논문으로 제안한 가상의 컴퓨터 모형을 지금은 '튜링 기계(Turing machine)'라고 부릅니다. 튜링 기계 모형에는 무한 개의 카드가 이어져 연결된 테이프가 등장합니다. 각각의 카드에는 기계의 실행 상태와 명령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튜링 기계의 역할은 카드에 적힌 명령어를 하나씩 읽어서 그 내용에 따라 테이프를 앞뒤로 한 칸씩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오늘날의 컴퓨터가 메모리에서 명령어를 읽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식을 꼭 닮았습니다. 프로그램 저장형 컴퓨터(stored-program computer)의 원형인 튜링 기계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컴퓨터 문명의 시초이자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세 때의 앨런 튜링

앨런 튜링이 튜링 기계의 논리적 설계를 구체화해서 디지털 곱셈 기계를 만들던 1937년 무렵에 독일과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연구 성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국과 추축국 양쪽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튜링 기계의 개념은 1950년대 중반에 더 단순한 형태로 바뀌었고 1960년대 초에는 더 친숙하고 컴퓨터스러운 계산 기계(counter machine)로 개선된 후 1970년대 중반에는 기록 기계(register machine), 무작위 접근 기계(Random-Access Machine)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론의 발전과 동시에 실제 컴퓨터 하드웨어의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946년에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최초의 범용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개발되었고 1949년에는 2진수를 사용하는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에드삭(EDSAC)이 개발되었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장과 함께 프로그래밍 언어도 발전해서 1957년에는 최초의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FOTRAN)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거쳐 마침내 1974년에는 8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탑재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ltair 8800’이 미국에서 출시되었고, 이후 컴퓨터 산업은 1980년대의 16비트 시대, 1990년대의 32비트 시대, 2000년대의 64비트 시대를 거치며 성장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컴퓨터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야기할 때 반도체 산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47년에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발명된 양극성 접합 트랜지스터(Bipolar Junction Transistor)는 작고 값싼 컴퓨터를 만드는 데 기여하며 전자공학의 대변혁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전력 소비가 크고 제조하기에 까다로운 근본적인 특성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에 반도체 물리학자인 강대원 박사가 마틴 아틸라 박사와 함께 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를 발명함으로써 집적 회로(Integrated Circuit)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손톱 만한 크기의 영역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는 직접 회로는 전자 기기의 소형화와 대량 생산을 이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직접 회로는 CPU, RAM, 플래시메모리 같은 반도체 소자의 가격을 낮추었고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와 휴대폰 등의 전자 기기가 널리 보급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12년 6월 23일에 태어난 앨런 튜링은 42년을 채우지 못한 1954년 6월 7일에 성소수자로서의 짧고 슬픈 삶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기술 문명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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