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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가요, 메이지 헌법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인문주 2022. 4. 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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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일본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명치유신)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이지(明治, 명치)는 1867년에 즉위했던 천황의 연호이고, 유신(維新)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메이지유신은 19세기 후반에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추진되었던 정치적, 사회적 개혁 과정을 의미합니다. 

 

메이지유신은 왕정복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왕정복고는 임진왜란 이후 줄곳 일본을 통치했던 에도 막부(幕府)를 해체하고 군주(천황)의 권력을 회복한 정치적 사건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때까지의 일본의 정치 체제는 왕정이 아니었다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왕정복고 이전까지 약 700년 동안 막부의 수장인 쇼군이 천황을 대신해 사실상의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행사했습니다. 막부라는 단어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군대 사령관이 천막(幕)을 쳐서 진을 펴고 전투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만드는 곳(府)을 뜻했는데 이후에 평시에도 군부가 국가를 통치하는 ‘무신 정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군인의 나라, 즉 군국(軍國)이었습니다.

 

막부 시대에 일본의 각 지방은 번(藩)으로 구분되어 다이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다이묘는 지방의 영주(領主)를 이르는 단어이고, 번은 영주가 통치하는 땅, 즉 영지(領地)를 이르는 단어입니다. 다이묘들은 쇼군의 직접 통치를 받는 대신 자체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사무라이, 즉 무사 계급을 고용하여 번을 다스렸습니다. 왕정복고를 통해 번은 폐지되었고 중앙 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즉 왕정복고는 중앙 집권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중앙 집권을 이룬 메이지 정부는 구미 열강을 모범 삼아 사회 전반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학제와 세제 개편, 사법 제도 정비, 단발령과 징병제 시행, 우편 제도와 그레고리력 도입, 철도 개통, 선박 운수 정비, 육식 보급 등 각종 제도와 생활 방식을 바꾸고 서구식 산업을 육성했습니다. 신분 제도는 사농공상이 폐지되어 평민으로 통일되었고 사무라이 계급은 사족으로, 귀족 계급은 화족으로 바뀌었습니다. 1874년부터 헌법 제정, 의회 수립, 불평등 조약 개정, 언론 및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자유민권운동이 시작되었고, 1882년에 헌법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다녀온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로 1889년에는 메이지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890년에는 메이지 헌법에 의거해 치뤄진 제1회 총선으로 제국 의회가 세워지며 근대 국가로서의 외형이 완성되었습니다. 

 

외형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군국(軍國)의 전통과 역사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무신 정권 시대의 정신이 외형만 바꾼 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완성된 외형과 실제 내용은 많이 달랐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철학을 담은 메이지 헌법의 요지는 한마디로 ‘문민통제가 결여된 군주의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결국 일본의 근대화는 군국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기미가요가 그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미가요는 군주의 절대 권력을 향한 찬가였습니다.

 

기미가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는 일본 국가의 제목입니다. 한국어로 '임금의 시대' 또는 '천황의 시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일본의 전통 문학인 단가에서 유래했으며 하야시 히로모리(林廣守)가 멜로디를 붙이고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의 편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きみ(기미)는 君(임금 군)의 일본어 훈독입니다. 君(임금 군)은 한국어에서와 비슷하게 '군주, 국왕, 윗사람에 대한 높임말, 남자를 부르는 호칭'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기미가요에서는 천황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が(가)는 の(노)와 같이 '~의'를 뜻하는 조사로서 주로 문학에서 사용됩니다. よ(요)는 代(대신할 대)의 일본어 훈독이며 기미가요에서는 '시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아래와 같이 해석됩니다.

 

君が代は

きみがよは (기미가요와)
임금(君)의(が) 시대(代)는(は)

 

千代に八千代に

ちよに やちよに (치요니 야치요니)
천(千) 대(代)에(に) 팔천(八千) 대(代)에(に)

 

細石の

さざれいしの (사자레이시노)
조약돌(細石)이(の)

 

巌となりて

いわおと なりて (이와오토 나리테)
바위(巌)가(と) 되어서(なりて)

 

苔の生すまで

こけの むすまで (고케노 무스마데)
이끼(苔)가(の) 생기기(生す)까지(まで)

기미가요는 “임금의 시대는 천대에 팔천대에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서 이끼가 생기기까지” 천황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내용입니다. 이후에 기미가요는 욱일기와 함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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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헌법

일본의 역사가 군국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일본제국 헌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메이지 헌법으로도 불리는 일본제국 헌법은 1882년에 유럽을 방문해 입헌군주제를 배우고 1883년에 돌아온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하여 만들었습니다. 1887년에 초안이 완성되어 1889년에 공포되고 1890년에 시행되었습니다. 

 

메이지 헌법의 전문은 고문, 헌법발표칙어, 상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문, 헌법발표칙어, 상유의 요지는 한마디로 “신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제국과 군주에게 충성할 것을 목적으로 헌법을 제정한다”는 것입니다. 메이지 헌법에 따르면 국가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군주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군주의 단독 의사로 만드는 헌법을 흠정헌법(欽定憲法)이라고 합니다. 의회나 국민 투표로 만드는 것을 민정헌법(民定憲法)이라고 하고, 군주와 국민의 합의로 만드는 것을 협정헌법(協定憲法)이라고 합니다. 메이지 헌법은 고문으로 시작됩니다.

 

고문

고문(告文)의 뜻은 ‘알리는 글’입니다. 고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짐이 선대 왕들의 신령께 고합니다. 신령의 보위를 승계하고 옛 뜻을 지킬 것입니다. 나라 안팎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해서 황실전범과 헌법을 제정합니다. 모두 선대 왕들 덕분입니다. 헌법의 내용을 잘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원컨대 신령은 이를 살피소서.

 

헌법발포칙어

헌법발포칙어(憲法發布勅語)는 ‘헌법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임금이 몸소 타이르는 말씀’입니다. 헌법발포칙어의 요지는 “이 헌법을 선포하는 목적은 신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제국과 군주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도로 정리됩니다.

 

짐은 국가의 융성과 신민의 행복을 기쁨과 영광의 중심으로 삼는다. 짐은 선대 왕에게 받은 통치 권한으로 신민들에게 이 영원한 법전을 선포한다. 우리 선대 왕들은 너희 신민들 조상들의 충성으로 우리 제국을 만들고 지켰다. 우리 선대 왕들 덕분에 신민들이 용감히 싸워 죽음으로써 이 나라의 아름다운 역사를 남긴 것이다. 짐은 너희 신민들이 다음과 같은 부담을 나누어 지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선대 왕들의 충성스러운 신민의 자손임을 잊지 말고, 짐의 뜻을 받들고, 짐의 일을 따라 수행하고, 더불어 협심하고 협력하여 우리 제국의 영광을 국내외에 널리 떨치고 선대 왕들의 유업을 영구히 공고하게 하려는 희망을 함께 하라.

 

상유

‘임금의 말씀’을 의미하는 상유(上諭)의 요지는 “신민이 따라야 할 짐의 명령인 이 헌법에 절대 순종한다면 신민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해주겠다. 이 헌법은 오직 임금만이 개정할 수 있다.” 정도로 정리됩니다.

 

짐은 선대 왕들의 업적을 이어받아 왕위에 올라 신민들이 덕과 재능을 발달시켜 함께 국가를 지킬 것을 바라며 메이지 14년 10월 12일 법전을 만들어 짐이 할 바를 밝히고, 후대 왕과 신민이 따라 행할 바를 알게 한다. 국가 통치의 대권을 선대 왕에게 이어받아 후대에 전하는 바이다. 짐과 후대 왕들은 이 헌법을 따라 행하는데 그르침이 없을 것이다. 짐은 신민의 권리와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고 보호하며 헌법과 법률 내에서 완전하게 소유하고 누리게 할 것이다. 메이지 23년에 제국의회를 소집하고 개회하여 헌법을 유효하게 할 것이다. 헌법의 개정이 필요할 때는 발의권이 있는 짐과 후대 왕이 개정할 내용을 의회에 넘길 것이다. 그러면 의회는 정한 바에 따라 의결하는 것 외에는 어지러이 아무나 함부로 고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짐과 조정의 대신이 이 헌법을 시행하는 임무를 가지며, 짐과 후대 왕과 신민은 이 헌법에 영원히 순종할 의무를 질 것이다.

 

조문

메이지 헌법의 조문은 다음과 같이 총 7장 76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천황

제2장 신민권리의무

제3장 제국의회

제4장 국무대신 및 추밀고문

제5장 사법

제6장 회계

제7장 보칙

 

제1장은 천황의 권한을 정의합니다. 천황이 대일본제국을 통치(제1조)하고 황실전범에 따라 세습(제2조)하며 신성하여 범할 수 없다(제3조)고 선언합니다. 입법권(제5조), 행정권(제6조), 의회 소집과 해산권(제7조)을 가지며 법률을 대신하는 칙령(제8조)과 명령(제9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육해군을 통수(제11조)하고 관리(제12조)하며 전쟁(제13조)과 계엄(제14조)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제2장은 신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내용입니다. 공무담임(제19조), 거주와 이전(제22조), 법률(제23조, 제25조, 제26조), 재판(제24조), 재산(제27조), 종교(제28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제29조), 청원(제30조)에 대한 권리와 병역(제20조), 납세(제21조) 등의 의무를 선언합니다.

 

제3장은 귀족원과 중의원으로 구성된 의회(제33조)에 관한 내용입니다. 귀족원(제34조)은 황족과 귀족이 담당하고 중의원(제35조)은 선거를 통해 구성됩니다. 내각을 불신임하거나 사법부를 탄핵하거나 국가간 조약을 비준하거나 헌법의 개정을 발의하는 등 천황과 사법부를 견제할 권한은 없습니다.

 

메이지 헌법의 요지는 문민통제가 결여된 군주의 절대권력이었습니다. 군주는 의회의 소집, 개회, 폐회, 정회, 해산을 명령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의회가 군주나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탄핵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행정부가 의회의 견제 없이 단독으로 명령을 만들거나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보통의 입헌군주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권이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국가권력은 하원 의회에 해당하는 중의원뿐이었고, 특히 선전포고나 군대 파견 동의 등 군 통수권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불가능한 점은 훗날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는 제도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헌법의 개정 권한은 군주에게만 있었고 1946년에 평화 헌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메이지유신이 만든 광란의 시대는 수많은 생명을 파괴하며 폭주하다 결국 핵폭탄 투하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만든 길은 기술 혁명과 민주주의를 통해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는 보편적인 흐름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습니다. 일본의 근현대사는 철학이 결여된 기술 문명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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